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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아래서] 절망 속에 빛나는 별들

매일 나보다 앞서 출근하던 현관문은 간 곳이 없고 하루의 피곤을 아무 불평 없이 안아주던 소파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깔깔대며 아이들이 밟고 내리던 계단은 손잡이 끝만 남아 그을음을 토합니다. 기억이 많을수록 슬픔도 깊어집니다. 도시라는 삭막한 콘크리트 덩어리 속에서 쉼터가 되어주던 자리는 이제 주소지만 남은 아픔이 되었습니다.   놀란 가슴은 어찌해야 할지 불안해하며, 허탈한 마음은 분노에 신음합니다. 어둠이 우리를 덮고 절망이 노을빛조차 감추어버립니다. 그러나 하늘이 어둠에 깊이 물들어 갈수록 별들도 하나 둘 나타납니다. 그리고 더 많이 더 깊이 빛나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둠 속에 별이 반짝이며 버티는 것 같지만 실은 별들 속에서 어둠이 힘겹게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별들이 새벽 햇살을 마중 나갑니다. 서쪽 하늘에는 도무지 물러설 것 같지 않은 어둠이 버티고 있었지만, 푸른 하늘과 함께 동은 트고야 맙니다. 절망은 우리를 삼킬 수 없고 소망 앞에 겨우 버틸 뿐입니다. 소망은 절망보다 강하고,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쓰며, 쥐어짜기도 하고 심심하면 손목을 비틀었던 자연이 실은 얼마나 무서우며 그 앞에 우리가 참으로 연약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도 다시 생각합니다. 바람 속에 모든 것이 사그라질 때,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 것을 준비하고 살았는지도 묻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소망은 사랑을 먹고 자라며, 위로는 함께 흘리는 눈물과 기댈 곳을 주는 따뜻한 어깨와 말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재난에 온 힘을 다해 맞서주는 소방대원들의 수고와 용기가, 잠시라도 지친 몸과 마음을 위해 소파가 되어주려고 달려오는 이웃들의 사랑이, 힘든 이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가 우는 분들과 함께 우는 눈물이 되고, 버텨주는 위로가 됩니다. 그 속에 다시 일어서는 당신이 우리의 감사입니다.     다시 손을 모읍니다. 하나님이시여 그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에게 향하소서. 우리의 힘이시여 우리를 도우소서. 곤고한 자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며 외면하지 않으시니 우리의 곤고와 눈물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눈물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고통 속에, 그 고통과 함께하시는 주님.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의 구원이시여.   [email protected]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등불 아래서 절망 서쪽 하늘 콘크리트 덩어리 자의 고통

2025-01-20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폭설

눈길을 헤치고 돌아와 목이 길어져 당신이 있는 서쪽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요. 좀 회복되면 함께 걷자던 친구는 생각보다 얼굴은 괜찮았고 조금 마른 듯 했지만, 그 친구 목이 길어져 삶이 깊어졌더라고요. 모두 깊은 동굴에 머무르고 싶지 않은 듯 출구를 찾으려 두리번대고 목소리도 발걸음도 느려진 저녁이었어요. 시킨 생선찌개는 어찌나 짜던지 돌아와 내 마음처럼 애꿎은 냉수만 찾았네요.     그나저나 오늘은 눈이 십여 인치나 쌓여 솜바지 챙겨 입고 창가에 앉아 지내는 게 제일 행복할 것 같기도 하여 빨간 열매 가득한 창가 블라인드를 올렸어요. 빛이 창문을 통해 밀려 들어오는 거예요. 거리도 나무도 지붕도 참 밖은 온통 눈 나라 하얀 고요가 시카고 하늘 위에 가득하네요. 근데 궁금해요. 당신을 후벼 파 끙끙 앓아 눕게 만든 그 시집, 선물로 내게 준다던 시집이 〈혼자 가는 먼 집〉이라는데 얼마나 먼 집인가? 꼭 혼자 가야 하나? 생각하며 눈 나라에서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어요. 목이 긴 짐승이 되면 멀리도 잘 보이려니 했지요. 도무지 보이지 않는, 그래서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 되어 있지요.     애꿎은 눈가를 훔치는 밤, 눈은 내리는데, 쌓이는데 눈 내리는 밤에 서로를 향해 걷다 보면 발끝이 이어지는 어디쯤에서 다시 지워지는 발 밤새 눈길에 발자국을 내고 지우고 당신을 향해 눈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동안, 사랑하는 동안 나는 당신 손에 빚어지고 당신 사는 하늘을 자꾸 바라보아요. 바라본 곳이 길이 되어 나는 시들다가 다시 피어나기도 하지요. (시인, 화가)     눈 덮인 계절 모습을 감춘 그대 치열하게 싹을 내미는 봄보다 편안한 호흡으로 행복하신지 나의 몸 어딘가에도 감추어진 마음 그 속 시간을 들여다보면 시간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 존재하는 건 잘게 잘려져 다가오는 작은 조각의 현재일 뿐 또 한 살을 먹고 있다. 오래 살아가고 있다 오래 그리워 오래 걸었다 호수 밀려오는 소리 정겹던 날들이 부른다     눈 내리는 밤 한 해도 그렇게 지나가고 새날도 그렇게 오고 있지 않나 온몸을 기울여야 하는 것 이 순간을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동안 행복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모든 나머지 것들은 그냥 지나치게 할 일이다 욕망을 덜어내는 시간 행복은 걸어 들어온다. 다시 눈길이다 사랑한 만큼 비워진 만큼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폭설 시카고 하늘 창가 블라인드 서쪽 하늘

202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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